문학(詩)

환절기

해륭 2014. 10. 8. 08:15

   환절기
         도종환
   

여름은 가을로 아프게 넘어갔다.
여름이 너무 길고 격렬해
올가을엔 단풍이 늦어지겠지만
기온이 낮아질수록
단풍은 곱게 물든다고 했다.


여름은 가을로 스산하게 넘어갔다. 일교차는 가난한 이들에게 더욱 커 낡은 외투의 깃을 자꾸 끌어올려야 했고 의지할 데 없는 이들은 옛 술집 근처로 모였다.

새로 닦아놓은 길은 황폐해지고 실망한 나무들은 일찍 잎을 버려서 이슬이 내리기도 전에 마을은 눅눅하였다.

여름은 가을로 아슬아슬하게 넘어갔다. 구름도 흑백사진의 한 귀퉁이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어이없이 쫓겨난 채 집의 허울을 붙들고 있는 이들에게도 전기도 수돗물도 끊긴 가을은 왔고, 탐욕이라고 불러도 좋고, 환멸이란 수식어를 붙여도 좋을 폭력적인 한 시대가 긴 그림자로 골목을 둘러싸고 있었다.

팔 한짝을 잃어버린 옷소매처럼 마음 허공으로 풀풀 날려다녔지만 비루함과 무기력의 껍질을 벗고 귀뚜라미처럼 더듬이를 허공에 올린 채 이 터질 것 같은 순간에 대해 타전하고 싶었다.

우리가 어찌하지 못하는 시간 말고, 천천히 바뀌며 우리 머리 위를 지나가고 있는 또하나의 거대한 시간 쪽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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