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詩)

폭설

해륭 2013. 12. 16. 10:23
 
  폭설(暴雪)
            오탁번
   삼동三冬에도 웬만해선
   눈이 내리지 않는
   남도南道 땅끝 외진 동네에
   어느 해 겨울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이장이 허둥지둥 마이크를 잡았다.

   주민 여러분!
   삽 들고 회관 앞으로 모이쇼잉!
   눈이 좆나게 내려부렸당께.
   이튿날 아침 눈을 뜨니
   간밤에 또 자가웃 폭설이 내려
   비닐하우스가 몽땅 무너져내렸다.
   놀란 이장이 허겁지겁 마이크를 잡았다.

   워메, 지랄나부렀소잉!
   어제 온 눈은 좆도 아닝께
   싸게싸게 나오쇼잉!
   왼종일 눈을 치우느라고
   깡그리 녹초가 된 주민들은
   회관에 모여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
   그날 밤 집집마다 모과빛 장지문에는
   뒷물하는 아낙네의 실루엣이 비쳤다.
   다음날 새벽 잠에서 깬 이장이
   밖을 내다보다가,
   앗!, 소리쳤다.
   우편함과 문패만 빼꼼하게 보일 뿐
   온 천지天地가 흰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하느님이 행성行星만한 떡시루를 뒤엎은 듯,
   축사 지붕도 폭삭 무너져내렸다.
   좆심 뚝심 다 좋은 이장은
   윗목에 놓인 뒷물대야를 내동댕이치며
   우주宇宙의 미아迷兒가 된 듯 울부짖었다.

   주민 여러분!
   워따. 귀신 곡하겠당께!
   인자 우리 동네 몽땅 좆돼버렸쇼잉!
    -<시향> 2006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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