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詩)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해륭 2021. 11. 12. 20:01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도종환
         

   저녁숲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기보다는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음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실가지
   가볍게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보다는
   동짓달 스무 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음 싶어.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구절초 이었음 해.
   내 사랑하는 당신이 꽃이라면
   꽃 피우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인
   콩꽃 팥꽃이었음 좋겠어.
   이 세상의 어느 한 계절,
   화사히 피었다 시들면
   자취 없는 사랑 말고
   저무는 들녘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 처럼 늙어갈 순 없을까,
   바람 많은 가을 강가에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우리 서로 물이 되어 흐른다면
   바위를 깎거나
   갯벌 허무는 밀물 썰물보다는
   물오리떼 쉬어가는
   저녁 강물이었음 좋겠어.
   이렇게 손을 잡고
   한 세상을 흐르는 동안,
   갈대가 하늘로 크고
   먼 바다에 이르는 강물이었음 좋겠어.

'문학(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움에 떠나려는 마음뿐  (0) 2021.11.15
기다림  (0) 2021.11.13
그리움이란 이름으로...  (0) 2021.10.27
얼굴  (0) 2021.09.04
♣ 내 마음에 그려 놓은 사람 ♣  (0) 2021.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