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詩)

님의 침묵

해륭 2021. 3. 26. 20:03

   님의 침묵
             한용운(韓龍雲, 1879~1944)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 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참아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명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닌 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임을 보내지 아니 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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