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詩)

봄 날

해륭 2019. 2. 25. 10:15

봄 날
         안도현


봄이 오기 전에는
그렇게도 봄을 기다렸으나
정작 봄이 와도
저는 봄을 제대로 맞지 못했습니다.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당신을 사랑하게 해 주소서.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로 해서
이 세상 전체가
따뜻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갓 태어난 아기가
응아, 하는 울음소리로
엄마에게 신호를 보내듯,
내 입 밖으로 나오는 사랑해요, 라는 말이
당신에게 닿게 하소서.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남의 허물을 함부로 가리키던 손가락과
남의 멱살을 무턱대고 잡던 손바닥을
부끄럽게 하소서.
남을 위해 한 번도 열려본 적이 없는 지갑과
끼니 때마다 흘러 넘쳐 버리던 밥이며 국물과
그리고,
인간에 대한 모든 무례와 무지와 무관심을
부끄럽게 하소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하소서.
큰 것 보다도 작은 것도 좋다고,
많은 것 보다도 적은 것도 좋다고,
높은 것 보다도 낮은 것도 좋다고,
빠른 것 보다도 느린 것도 좋다고,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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