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詩)

세월이 내 등을 밀지 않았더라면

해륭 2017. 11. 11. 18:09

세월이 내 등을 밀지 않았더라면
                                  박계수


세월이 내 등을 밀지 않았더라면
난, 이렇게 살았을 게다.
새참 내 오는 찔레 밭둑에서
아내랑 같이 고수레를 하고
사래 긴 밭 지심 멜 걱정이나 하며
그렇게 한 세상 살았을 게다.
스무사흘 새벽달이 잠긴 옹달샘,
표주박으로 고이고이 떠올릴 적에
아내보다 내가 먼저 사립을 열고
샘긴 이슬을 털어 냈을 게다.
먹다 남은 감 꽃 목에 걸고
풀물이 베어 돌아오는 막내딸 눈동자,
나도 딸처럼 푸른 눈으로
장에 간 아내를 기다렸을 게다.
상처나면 자리 밑 흙 긁어 바르고,
오줌싸면 키 씌워 소금 꾸러 보내고
한차례 모이 주면 그만인 병아리처럼,
새끼들도 그렇게 키웠을 게다.
아, 세월이 내 등을 밀지 않았더라면
난, 그렇게, 그렇게 살았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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