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詩)

철길에 앉아

해륭 2014. 11. 20. 10:40

  철길에 앉아
            정호승
  철길에 앉아 그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철길에 앉아 그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때 멀리 기차 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기차는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코스모스가 안타까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기차가 눈 안에 들어왔다.
  지평선을 뚫고 성난 멧돼지처럼
  씩씩거리며 기차는 곧 나를 덮칠 것 같았다.
  나는 일어나지 않았다.
  낮달이 놀란 얼굴을 하고
  해바라기가 고개를 흔들며
  빨리 일어나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이대로 죽어도 좋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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