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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에게 진리를 묻다.

해륭 2014. 1. 2. 17:15

 

|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에게 진리를 묻다 |

 

 

                       플라톤 Plato,B.C. 428 ~ B.C.348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로도 유명한 사람입니다.

사실 플라톤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소크라테스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당대에도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었지만, 직접 쓴 책이 한 권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소크라테스가 남긴, ‘너 자신을 알라’를 비롯한

수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을까요?


소크라테스는 모두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러한 질문을 통해 사람들이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지요.

하지만 그의 생각은 정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굉장히 독창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지만 그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기에

소크라테스의 열린 정신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사람이 필요했어요.

그 일을 한 사람이 바로 플라톤입니다.

플라톤을 비롯한 크세노폰,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후대 철학자들이 소크라테스를 존경하여

그 뜻을 받들었기 때문에 21세기 동아시아 대륙 끝에서 살고 있는 우리도

소크라테스라는 이름을 다 알고 있는 것이지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성장 과정부터 많이 달랐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아버지는 조각가였고 어머니는 산파로서 중산층에서도 하위 계급에 속했지만,

플라톤은 상류 귀족 가문에서 최고급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심한 들창코에 못생기기로도 유명했습니다.

개그맨 옥동자 아시죠? 소크라테스는 옥동자를 약간 뻥튀기해 놓았는데

조금 더 못생겼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하지만 플라톤은 금발을 휘날리며 마을을 돌아다니면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주목할 정도로 아주 잘생긴 인물이었어요.

집안도 워낙 훌륭해서 어릴 때부터 지금으로 치면 국무총리 무릎 위에서 놀았을 정도이고

당대 잘나가는 정치인들이 수시로 집안을 드나들었지요.

플라톤은 이미 열일곱 살 때부터 아테네를 대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영리하고 똑똑하며 희곡을 쓰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운동도 잘했습니다.


너무나 슬픈 얘기지만, 이렇게 뛰어난 집안에서 태어나면 우리나라에서는

군대를 안 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뛰어난 집안의 사람들은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병역을 기피하는 경우가 많고요.

그러나 플라톤은 군대 가는 것도 최고 수준이었어요.

당시에는 신기하게도 군대에 갈 때 자기 집안의 형편에 맞춰서

자신들이 사용할 무기를 사 가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플라톤이 어느 정도로 잘살았느냐 하면

아예 최고의 기병으로서 말을 사 가지고 입대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성공 가도를 달리던 플라톤의 인생에 중대한 변화가 생깁니다.

어느 날, 플라톤은 아테네의 아고라 광장을 지나가다

람들이 잔뜩 모여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어느 못생긴 사람이 소피스트라고 불리는

당시 가장 유명한 선생들과 토론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날카로운 몇 가지 질문으로 당대 최고의 선생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던 그 사람이

바로 소크라테스였지요.

그 광경에서 강한 인상을 받은 플라톤은 그때부터 소크라테스를 졸졸 쫓아다녔습니다.

그리고 무려 9년 동안을 그렇게 소크라테스를 따라다니면서 그의 모든 것을 배워 갔습니다.


아시다시피 소크라테스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모함을 받았습니다.

테네의 대다수 사람들은 소크라테스를 위험한 인물로 여겼습니다.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지요.

대부분의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말을 그대로 따라 주기를 바랐는데,

소크라테스가 기존의 사고방식과는 다르게 생각하도록 젊은이들을 이끈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소크라테스가 신성을 모독했다는 것이었어요.

 

소크라테스는 다이모니온의 소리, 즉 양심의 소리를 들으라고 얘기했는데

그 이전까지 믿지 않았던 새로운 신을 선포한 셈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소크라테스는 재판을 받고 자신을 멋지게 변론했지만,

그의 변론에 자존심을 상한 아테네 인들에 의해 사형 선고를 받아

결국 독배를 마시고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플라톤은 그 재판 과정을 500명의 참관인들 속에서 죄다 지켜 보았습니다.

그때까지 플라톤은 자신이 아테네 인이라는 것을 너무나 자랑스럽게 생각했었죠.

그런데 그 아테네에서 자기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스승을

민주적인 결정 방식에 따라 죽이는 모습을 보며 충격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와의 추억이 가득 찬 도시에 머물지 못하고 아테네를 떠나 버리고 말지요.

 

 

홀로 선 플라톤 : 이상과 실패

플라톤은 지중해 주위의 여러 도시들을 돌아다니면서 다시 공부를 시작합니다.

소크라테스에게서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방법을 배웠다면,

이제는 여러 학문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쌓아 나갔습니다.

그러던 중 새롭게 만난 스승이 바로 유클리드였습니다.

플라톤은 유클리드에게서 수학과 기하학을 배우며

12년 동안 지중해의 도시들을 돌아다니게 됩니다.

불혹(不惑)이라는 말을 혹시 들어 보셨나요?

불혹은 세상일에 흔들려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인 마흔 살을 말합니다.

라톤은 스물여덟 살에 아테네를 떠나서 마흔 살까지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공부를 한 후,

자신의 뜻을 펼치게 됩니다.


플라톤의 어렸을 때 꿈은 무엇이었을까요?

제가 앞에서 힌트를 드렸습니다.

플라톤이 어렸을 때 누구의 무릎에서 뛰어놀았죠?

치가들의 무릎에서 뛰어놀았잖아요.

이제 플라톤은 공부한 것을 바탕 삼아 정치적으로 자신의 뜻을 펼치고 싶었어요.


마침 기회가 찾아왔어요.

플라톤은 시칠리아의 작지만 아주 부유했던 도시 국가 시라쿠사로부터

자신을 정치 자문관으로 초청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얼마나 좋았겠어요.

드디어 정치가로서의 꿈을 펼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었습니다.

시라쿠사에 도착해 살펴보니까 나라도 잘살고 깨끗하며

왕도“플라톤 선생님, 오셨습니까?”라고 말하면서 크게 반겨 주는 거예요.

‘아, 여기라면 나의 꿈을 펼칠 수 있겠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플라톤만의 착각이었습니다.

이후 플라톤이 자기가 생각한 것, 소크라테스가 옳다고 생각한 방법을

왕에게 쭉 설명하기 시작하자 왕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거예요.

자세히 알고 보니 나라 곳곳이 부패해 있었습니다.

플라톤이 이를 비판하기 시작하자 탐관오리들은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기게 되었지요.

결국 플라톤에게 스파이 혐의를 뒤집어씌워 국가 반역죄로 몰아갔어요.


생각해 보세요. 그렇게 잘생겼고, 공부도 철저하게 했고, 너무나 열심히 일하고자 했던 플라톤이

그만 국가 반역죄를 뒤집어쓰고 노예로 팔리게 된 것입니다.

플라톤은 악만 남았어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할수록 증오와 분노로 가득 찼습니다.

노예 시장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눈에는 살기만 남아 있다 보니

흉측한 모습으로 변해 갔지요. 이런 노예를 사 가는 사람이 있었을까요?

 

그러던 어느 날 소크라테스의 강의를 들은 적 있는 아니케리스라는 사람이

그 노예 시장에 나타났어요.

그는 집안을 관리해 줄 똑똑한 노예를 찾고 있었는데,

플라톤을 딱 보고 마음에 들었던지 말을 걸었지요.

“어디 출신인가?”

플라톤은 한동안 대답을 않고 있다가“아테네.”라고 퉁명스럽게 말합니다.

 “아테네? 그러면 혹시 나의 스승 소크라테스의 이름을 들어보았나?”

그 전까지 무슨 얘기를 해도 반응을 보이지 않던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이름을 듣고는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소크라테스? 나의 스승 소크라테스를 당신이 어떻게 아는가?”라고 얘기한 거예요.

두 사람 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스승이라고 말한 겁니다.

“내 스승이신데 자네는 누군가?”“플라톤.”“플라톤이라고?”

플라톤이 워낙 유명한 집안 출신이었으니까 이 사람도 플라톤의 이름은 들어 봤던 거예요.

그런데 도저히 그가 플라톤임을 알아볼 수 없었어요.

워낙 변해 있었기 때문이죠.

머리는 풀어헤치고 옷은 너덜너덜해져 전혀 알아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플라톤을 노예로 사게 됩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어떤 관습이 있었느냐 하면,

주인이 원하면 노예를 자유민으로 풀어 줄 수 있었어요.

이 주인은 플라톤에게 자유를 주었습니다.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노예 시장에서 온갖 고생을 하다가 풀려난 플라톤은

제 고향 아테네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소크라테스 때문에 떠나왔던 아테네이지만

소크라테스 이름을 듣고 나자 고향이 다시 그리워졌어요.


아테네로 돌아온 플라톤은 자신의 집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것을 보고 너무도 기뻤습니다.

플라톤의 집은 집사들이 관리를 잘해서 상속인이 떠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축나지 않고 잘 보존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플라톤은 자신을 자유민으로 만들어준 아니케리스에게 보답하려 했습니다.

재산의 일부를 팔아서 돈을 마련했고, 시라쿠사로 종을 보내 그에게 전달했습니다.

하지만 아니케리스는 펄펄 뛰면서 이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하고 플라톤에게 돌려보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지금으로 따지자면 이 돈은 1억 원도 넘을 거금이었지요.

자신의 생명과 바꾼 그 큰 돈을 되돌려 받았는데 아무 데나 쓸 수는 없었어요.

 

플라톤의 아카데미아

그후 플라톤은 아카데모스에 있는 신전 근처의 한 정원을 사들여 학교를 짓게 됩니다.

그 학교의 이름은 여러분도 들어 봤을 것 같아요.

여러분 자습서에도 자주 나오는‘아카데미’라는 단어가 바로 여기서 나왔답니다.

철학자 플라톤의 몸값을 가지고 세운 이 학교가 바로‘아카데미아’입니다.

아카데메이아라고도 불렸던 이 학교는 너무나 유명해졌어요.

훌륭한 스승 플라톤과 그의 동료와 제자가 모여서 강의를 하니

이곳은 단순한 학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시국 문제를 논의하는 장소가 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의 부모님 세대 때는 시위가 많고 경찰한테 대학생들이쫓기는 경우가 많았어요.

서울에서는 대학생들이 시위하다 도망해 피신하면

제아무리 경찰이라도 잡으러 들어갈 수 없는 곳이 한 군데 있었어요.

들어 본 사람 있어요?

 바로 서울의 명동 성당입니다.

이곳으로 대학생들이 피신하면 경찰이 문 앞까지만 들어가고 더 이상 추적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당시 김수환 추기경님이 대학생들을 잡으려면 먼저 자신을 밟고 지나가야 하고,

그다음에는 신부님들을 밟고,

그다음에는 수녀님들을 밟고 나서야 학생들을 잡아갈 수 있다고 말하며

보호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당시 아카데미아가 그런 곳이었어요.

정치범이 모함을 받아서 아카데미아로 피신하면 안전이 보장되었습니다.

워낙 신성하고 훌륭한 학교였기 때문에 경찰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이지요.

정치범이 이곳으로 들어오는 순간 토론이 시작됩니다.

“무슨 일로 이곳에 들어왔습니까?”라는 질문부터 시작해서

정의나 죽음 등과 같은 다양한 주제로 토론이 펼쳐지는 것이지요.

마이클 샌델의《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읽어 봤나요?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도 이미 아카데미아에서 한 번쯤 다루어졌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너무나 행복하게도 플라톤은 이곳에서 40년을 더 가르치고 나

여든 살의 고령이 되었을 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플라톤은 아카데미아에서 강의하며 많은 제자를 두었고

후세 사람들에게 훌륭한 스승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자, 이제 다음 그림을 함께 볼까요? 이게 누구 그림인지 아세요?


그림 전체를 한번 보세요. 중앙에 두 명이 서 있습니다.

한 사람은 이미 머리가 벗겨지고 꽤 고령이에요.

한 일흔 살은 된 것 같고 책을 들고 있지요.

책에는“티마이오스Timaios”라는 이름이 적혀 있는데 수직으로 들고 있죠.

이 사람이 바로 플라톤입니다.

플라톤 옆에 있는 파란 망토를 두르고 아주 날카롭게 생긴 갈색 머리 남자는 누구일까요?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윤리학”이라는 책을 수평으로 들고 있어요.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게 바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손입니다.

플라톤은 손을 어떻게 하고 있지요?

둘째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고 있지요.

아리스토텔레스의 손은 펼친 상태로 땅을 향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손 모양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입니다.

소크라테스와 유클리드를 비롯한 고대 철학의 대표자들이 총출동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바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플라톤이 둘째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것은

 ‘저 영원불변한 이데아의 세계를 보라.’라는 메시지는 담으려고 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손을 펼쳐 땅을 향한 것은‘저 영원하고 불변한 세계만 바라본다면,

이 아름다운 자연 세계는 누가 탐구합니까?

왜 여기에는 진리가 없습니까?’라면서 스승 플라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 장면 같습니다.


여러분 중에서는 철학적인 관심이 있는 사람도 있지만

자연과학에 종사하면서 자연 세계를 탐구할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저 영원하고 불변한 이데아의 세계가 아니라

이 자연세계를 탐구하는 데 큰 관심을 기울인 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카데미아의지성인, 아리스토텔레스

자, 이제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플라톤은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어린 시절부터 집으로 찾아오는 정치가들을 만났고 기본적으로 정치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직접 정치 경험을 하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아카데미아를 세워 제자들을 가르쳤지요.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출신 성분 자체가 달랐어요.

아버지 니코마코스의 직업은 의사였습니다.

의사가 돈을 많이 벌게 된 것은 근래의 일이에요.

니코마코스는 의사 중에서도 왕을 돌보는 의사, 즉 시의(侍醫)였어요.

당시에는 수의사와 의사의 구분이 없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버지가 일하는 작업장에 가서

다리가 다섯 달린 송아지,

창자가 터져 나온 말 등과 같은 것들만 보고 다녔지요.

이처럼 그는 일찍이 주변의 동식물을 관찰하면서

자연과 친숙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eles, B.C. 384 ~ B.C. 322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는 달리 아테네 출신이 아니라

마케도니아의 스타게이로스라는 곳에서 태어났는데,

열일곱 살 때 이미 자신이 구할 수 있는 모든 책을 거의 다 읽었어요.

마케도니아에서는 더 이상 자신을 가르쳐 줄 스승을 찾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시 최고의 학교가 있는 아테네로 유학을 떠나

열여덟 살 때 아카데미아에 입학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테네에 비하면 초라한 시골에 불과했던 마케도니아 출신의

아리스토텔레스를 주목하는 친구는 하나도 없었어요.

아카데미아의 학생들은 모두가 쟁쟁하게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리스토텔레스가 드디어 토론의 주제 발표자로 뽑히게 됩니다.

플라톤이 얘기했지요

.“거기 갈색 머리 친구, 자네가 다음에 발표를 한번 해 보게

.” 아리스토텔레스는 ‘아, 내가 진짜로 멋진 발표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는 밤새도록 준비했어요.

야심차게 프리젠테이션 연습도 몇 번씩 하고 발표장에 딱 들어갔어요.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결정적인 단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말을 더듬는 버릇이 있었던 것입니다. “저, 저……. 으음, 저, 정의란…….”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정의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봅시다.

이렇게 당당하게 시작해야 하는데,

그 말은커녕 정의라는 단어조차도 더듬거리고 만 것입니다.

말을 더듬는 사람들은 친구와는 이야기를 잘하는데,

긴장하거나 주눅이 들면 말을 더듬는 경우가 많거든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완전히 웃음거리가 되어 버렸고,

그다음 발표부터는 더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보통은 좌절하게 마련이겠죠?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달랐어요. 한 번의 토론이 이루어질 때마다

그 토론의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꼼꼼하게 메모해 놓았어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카데미아에서 18년 동안이나 공부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플라톤이었지만 매번 새로운 주제를 가지고 토론할 수는 없었어요.

 5~6년쯤 지나 다시 한 번‘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토론이 벌어졌을 때

아리스토텔레스의 아주 절친한 친구가 발표를 맡게 됩니다.

이 친구가 발표에 대해 걱정을 하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살짝불렀어요.

 “야, 선생님이 6년전에 토론했던 것을 기록한 노트가 있어.

그러니까 그 노트를 보고 저쪽 친구가 이렇게 공격해 들어오면

너는 이쪽으로 막아내고 나서 딴지를 걸어 넘어뜨리는 거야.

그 친구가 흔들리고 있을 때…….”

물론 몸으로하는게아니라 말로하는거예요.

“말로 딱넘어뜨리고나서 마지막 조이기를 들어가는 거야.

상대방이 버둥거리면서 힘을 쓰려고 할 때는 마지막 암바 기술을 써서

최종적으로 그를 이겨 내면 되는 거야.

”아리스토텔레스가 메모해 둔 노트를 보고 토론 기술을 가르쳐 준 거예요.

이 친구는 진짜 놀랐어요.

마치 연극을 하는 것처럼, 아리스토텔레스가 가르쳐 준 대로 토론을 하니까

상대방이 꼼짝 못하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토론 기술에 대해 쓴 책이 바로《논리학》입니다.

논리학을 처음으로 만들어 낸사람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였던 것이지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의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동물과 식물,즉 자연의 세계에 대해 어릴 때부터 관심이 많았고

이후 자연 과학에 대해서 많은 연구를 했습니다.

자연 과학을 피지카physica라고 하는데, 이 말에서 유래한‘physics’는 물리학을 뜻하지만

당시에는 자연 전체를 다루는 학문의 이름이었습니다.

생물학, 물리학, 화학, 천체 과학을 모두 포함하지요.

참고로 ‘metaphysics’는 형이상학이라는 뜻인데,

모든 형태적인 것을 넘어서 있는 원리 또는 분야를 뜻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각 분야를 연구해

《피지카》,《 형이상학》,《 윤리학》 등의책을남겼습니다.

 

우리나라 대학에는 철학이나 문학 그리고 역사학을 포함하는 인문학 분야,

정치학과 사회학을 포함하는 사회 과학 분야

그리고 물리학, 화학, 수학, 생물학 등을 포함하는 자연 과학 분야가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모든 것들을 혼자 다 공부한 사람이에요.

아리스토텔레스는 매우 철저하게 공부를 했고,

모든 것들을 아우를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이고 체계적인 사상가였습니다.

그래서 플라톤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아카데미아의 지성인’이라고 부르며 무척 아꼈습니다.

플라톤이 여든 살에 세상을 떠나자

사람들은 모두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의 자리를 물려받아

아카데미아의 교장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플라톤의 조카인 스페우시포스가 아카데미아의 교장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상심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카데미아를 떠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두가 플라톤을 외치지만,

플라톤처럼 훌륭한 분은 칭찬할 만한 가치를 지닌 자가 칭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플라톤을 칭찬할 만한 가치를 지닌 자가 누구겠어요?

실제로 후계자가 된 스페우시포스도 플라톤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그는 플라톤이 세상을 떠나자 아카데미아를 수학 학원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어요.

플라톤은 수학을 공부해 기초를 닦은 다음에 이데아의 세계를 탐구하라고 했는데,

스페우시포스는 학문의 깊이가 없어 아카데미아에서 수학만 가르친 거예요.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카데미아를 떠나 독창적인 길을 가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얘기했어요.

“나에게가장좋은친구가둘이있는데, 하나는 스승이지만 플라톤이라는 친구이고,

또 하나는 진리라는 친구다.

” 하지만 두 친구가 다른 길을 가려 한다면 누구를 따라가야 했을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진리를 따라가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플라톤한테 충분히 잘 배웠지만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하는 결심이 섞인 얘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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