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詩)

겨울나기

해륭 2012. 11. 19. 08:05

  겨울나기
         도종환
  
아침에 내린 비가
이파리 위에서 신음소리를 내며
어는 저녁에도 푸른 빛을 잃지 않고
겨울을 나는 나무들이 있다.


하늘과 땅에서 얻은 것들 다 되돌려 주고 고갯마루에서 건넛산을 바라보는 스님의 뒷모습처럼 서서 빈 가지로 겨울을 나는 나무들이 있다.

이제는 꽃 한 송이 남지 않고 수레바퀴 지나간 자국 아래 부스러진 잎사귀와 끌려간 줄기의 흔적만 희미한데 그래도 뿌리 하나로 겨울을 나는 꽃들이 있다.

비바람 뿌리고 눈서리 너무 길어 떨어진 잎이 세상 거리에 황망히 흩어진 뒤 뿌리까지 잃고 만 밤, 씨앗 하나 살아서 겨울을 나는 것들도 있다.

이 겨울 우리 몇몇만 언 손을 마주 잡고 떨고 있는 듯해도 모두들 어떻게든 살아 견디고 있다. 모두들 어떻게든 살아 이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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