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詩)

종이배 사랑

해륭 2012. 6. 5. 10:27

 
   종이배 사랑
                   도종환
    
 
내 너 있는 쪽으로
흘려보내는 저녁 강물빛과
네가 나를 향해 던지는 물결소리 위에
우리 사랑은
두 척의 흔들리는 종이배 같아서
무사히 무사히
이 물길 건널지 알 수 없지만,

아직도 우리가 굽이 잦은 계곡물과 물살 급한 여울목 더 건너야 하는 나이여서 지금 어깨를 마주 대고 흐르는 이 잔잔한 보폭으로 넓고 먼 한 생의 바다에 이를지 알 수 없지만,
이 흐름 속에 몸을 쉴 모래톱 하나 우리 영혼의 젖어 있는 구석구석을 햇볕에 꺼내 말리며 머물렀다 갈 익명의 작은 섬 하나 만나지 못해
이 물결 위에 손가락으로 써두었던 말, 노래에 실려 기우뚱거리며 뱃전을 두드리곤 하던 물소리 섞인 그 말, 밀려오는 세월의 발길에 지워진다 해도 잊지 말아다오 내가 쓴 그 글씨 너를 사랑한다는 말이었음을...
내 너와 함께하는 시간보다 그물을 들고 먼 바다로 나가는 시간과 뱃전에 진흙을 묻힌 채 낯선 섬의 감탕밭에 묶여 있는 시간 더 많아도
내 네게 준 사랑의 말보다 풀잎 사이를 떠다니는 말, 벌레들이 시새워 우는 소리 더 많이 듣고 살아야한다 해도 잊지 말아다오 지금 내가 한 이 말이 네게 준 내 마음의 전부였음을...
바람결에 종이배에 실려 보냈다 되돌아오기를 수십번 살아 있는 동안 끝내 이 한마디 네 몸 깊은 곳에 닻을 내리지 못한다 해도 내 이 세상 떠난 뒤에 너 남거든 기억해다오 내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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