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詩)

나는 나를 지나쳐 왔다.

해륭 2017. 6. 20. 20:21

나는 나를 지나쳐 왔다.
                     박노해
인생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
나는 너무 서둘러 여기까지 왔다.
여행자가 아닌 심부름꾼처럼
계절 속을 여유로이 걷지도 못하고,
의미있는 순간을 음미하지도 못하고,
만남의 진가를 알아채지도 못한 채,
나는 왜 이렇게 삶을 서둘러 멀어져 왔던가.
달려가다 스스로 멈춰서지도 못하고,
대지에 나무 한 그루 심지도 못하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지도 못하고,
주어진 것들을 충분히 누리지도 못했던가.
나는 너무 빨리 서둘러 왔다.
나는 내 삶을 지나쳐 왔다.
나는 나를 지나쳐 왔다.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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