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詩)

빈 가지

해륭 2015. 10. 19. 08:58

  빈 가지
          도종환
  

잎진 자리에 나뭇잎 있던 흔적조차 없다.
두고 떠나온 자리에 이젠 내 삶의 흔적,
흘린 땀방울 하나 자취조차 없다.
누구도 서로에게 확실한 내일에 대해
말해줄 수 없는 시대,
돌아보면 너무도 많은 이가
벌판이 되어 쓰러져 있는 저녁.
얼음을 만진 듯한 냉기만이
얼굴을 쓸고 가는데
우리 생의 푸르던 날은 다시 오는 걸까.
누구도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긴 겨울,
잡목덤불 헤쳐 새 길을 내야 하는
이 늦은 시각에
다시 등을 기대고 바라보는 나무의 빈 가지.
그러나 새 순 새 가지는 잎 진 자리에서
다시 솟는 것임을 믿을 수밖에 없는,
그렇게 나무들이 견디며 살아왔듯
그때까지 다시 기다릴 수밖에 없는....
* 시집 <부드러운 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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