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詩)

길 위에서

해륭 2014. 9. 24. 09:17

길 위에서
          나희덕
길을 잃고 나서야 나는
누군가의 길을 잃게 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떤 개미를 기억해내었다.
눅눅한 벽지 위 개미의 길을
무심코 손가락으로 문질러버린 일이 있다.
돌아오던 개미는
지워진 길 앞에서 두리번거리다가
전혀 엉뚱한 길로 접어들었다.
제 길 위에 놓아주려 했지만
그럴수록 개미는 발버둥치며 달아나버렸다.
길을 잃고 나서야 생각한다.
사람들에게도 누군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냄새 같은 게 있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인연들의 길과
냄새를 흐려놓았던지,
나의 발길은 아직도 길 위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문학(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 말고....  (0) 2014.09.29
호수  (0) 2014.09.26
전생의 비유  (0) 2014.09.23
그들이 사는 세상  (0) 2014.09.22
그런 날 있었는지,  (0) 2014.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