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詩)

나를 꼭 잊고 싶다면....

해륭 2019. 5. 15. 20:51

나를 꼭 잊고 싶다면....
                             김정한


나를 꼭 잊고 싶다면
조금씩 지워가며 잊어주시기를,
나를 꼭 지우고 싶다면
한꺼번에 삭제 버튼을 누르지 마시고
당신을 흔들어 놓았던 메일을
한 줄씩 지워 가시기를,
바라옵건대
조금씩 천천히 지워 가시기를,
그저, 당신에게
용서를 구할 것이 있다면
허락받지 않고
당신을 사랑한 죄밖에 없으니,
가끔씩 당신이 그리우면
당신에 대한 기억 몇 자락만이라도
몰래 끄집어내어
혼자만이라도
웃고 또 울며 추억할 수 있게
새털만큼 가벼운 흔적만이라도
남겨 두시기를,
나를 꼭 잊고 싶다면
조금씩 지워가며 잊어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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