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詩)

그때는 설레었지요.

해륭 2017. 2. 21. 07:55

그때는 설레었지요.
                 황인숙
 

그때는 밤이 되면 설레어
가만히 집 안에 있을 수 없었지요.
어둠이 겹주름 속에
감추었다 꺼내고
감추었다 꺼냈지요, 만물을....
바람이 어둠 속을 달리면
나는 삶을 파랗게 느낄 수 있었어요.
움직였지요.
삶이 움직였지요.
빌딩도 가로수도 살금살금 움직였지요.
적란운도 숲처럼 움직였지요.
나는 만물이 움직이는 것을
자세히 보려고 가끔 발을 멈췄어요.
그러면 그들은 움직임을 멈췄어요.
그들은 나보다 한 발 뒤에 움직였어요.
달린다, 달린다,
움직인다, 움직인다,
우리는 움직임으로 껴안았지요.
그때는 밤이 되면 설레어
가만히 집 안에 있을 수 없었어요.
바람이 어둠 속을 달립니다.
전신이 팔다리예요.
바람이 자기의 달림을
내 몸이 느끼도록
어둠 속에서 망토를 펄럭입니다.
나는 집 안에서 귀기울여 듣습니다.
바람은 달립니다.
어둠의 겹주름 속을....
그때는 밤이 되면 설레어
가만히 집 안에 있을 수 없었지요.

'문학(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망의 시  (0) 2017.02.23
행복  (0) 2017.02.22
문지방을 넘다.  (0) 2017.02.20
착한 여자  (0) 2017.02.17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  (0) 2017.02.16